정치1921년 11월 12일 – 1922년 2월 6일

워싱턴 회의

다른 이름: 워싱턴 군축 회의, 태평양 회의

미국의 초청으로 열강이 워싱턴에 모여 해군 군비를 줄이고 태평양·중국 문제를 정리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일본의 팽창을 묶어 두는 워싱턴 체제가 섰다.

워싱턴 회의(군비 제한 회의) — 1921–1922년, 워싱턴
워싱턴 회의(군비 제한 회의) — 1921–1922년, 워싱턴

Harris & Ewing,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제1차 세계 대전 뒤 미국·영국·일본은 앞다투어 군함을 늘렸고, 태평양과 중국을 둘러싼 미·일의 경쟁도 날카로워졌다. 미국 하딩 정부의 초청으로 1921년 11월 12일 9개 나라 대표가 워싱턴에 모였다. 국제 연맹에 들지 않은 미국이 전후 질서를 이끄는 자리에 선 것이다.

4개국 조약으로 태평양 섬들의 현상 유지를 약속하면서 영·일 동맹이 끝났다. 5개국 해군 군축 조약은 미·영·일·프·이의 주력함 비율을 5 : 5 : 3 : 1.75 : 1.75로 묶었고, 9개국 조약은 중국의 영토 보전과 문호 개방을 확인했다. 일본은 산둥의 옛 독일 이권을 중국에 돌려주었다.

이로써 유럽의 베르사유 체제와 짝을 이루는 워싱턴 체제가 섰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승만·서재필 등을 보내 독립을 호소했으나 회의는 한국 문제를 다루지 않았고, 이 실망은 국민 대표 회의(1923)로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921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개최국 — 대통령 워런 하딩
영국 · 체결국
일본 · 체결국 — 다이쇼 일왕
프랑스 · 체결국
이탈리아 · 체결국
중화민국 · 체결국
네덜란드 · 체결국
벨기에 · 체결국
포르투갈 · 체결국

관련 인물

  • 이승만1875년 – 1965년

    관련자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폈다. 뒤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 서재필1864년 – 1951년

    관련자 ·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돌아와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협회를 이끌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사건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공황과 전체주의1919년 – 1939년

    워싱턴 회의에서 폴란드 침공까지 — 국제 협조의 시대가 대공황으로 무너지고, 파시즘·나치즘·스탈린 체제가 일어나 다시 세계 대전으로 치달은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