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기원전 770년
주의 동천과 춘추 시대의 시작
다른 이름: 동주, 주의 동천, 춘추 시대, 춘추 5패
견융의 침입으로 호경이 무너지자 주 평왕이 도읍을 동쪽 낙읍(뤄양)으로 옮겼다.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고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춘추 시대가 열렸다.

서주 말 유왕이 왕비와 태자를 바꾸자, 쫓겨난 왕비의 아버지 신후가 서북쪽의 견융을 끌어들였다. 기원전 771년 유왕은 여산 아래에서 죽고 도읍 호경은 짓밟혔다. 이듬해 기원전 770년 평왕이 동쪽 낙읍(오늘의 뤄양)으로 도읍을 옮겼고, 이때부터를 동주라 한다.
왕실은 작은 땅만 다스리게 되어 제후를 누를 힘을 잃었다. 강한 제후들은 "왕실을 높이고 주변 이민족을 물리친다(존왕양이)"는 명분을 내세워 회맹을 이끌며 패자가 되었는데, 제 환공을 비롯한 이들을 춘추 5패라 부른다. 노나라의 역사책 『춘추』에서 이름을 딴 춘추 시대는 기원전 403년 진(晉)이 셋으로 나뉠 때까지 이어지고, 이어 전국 시대가 열렸다. 같은 무렵 고조선은 비파형 동검으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