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수

신라의 6두품 유학자. 외교 문서를 잘 지어 무열왕·문무왕의 외교를 도왔다

중원경(충주) 출신으로, 머리 뒤에 뼈가 튀어나와 "강수"라 불렸다고 전한다. 무열왕이 당 사신이 가져온 어려운 국서를 그에게 풀게 하면서 이름이 났다. 문무왕은 삼국 통일에 그가 지은 외교 문서의 공이 컸다고 평했다. 불교를 세속의 가르침이라 하여 유학을 택했고, 설총·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대표 유학자로 꼽힌다. 6두품 유학자들이 왕의 정치를 돕던 신문왕 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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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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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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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2년국학 설치관련자

    신문왕이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세웠다. 유교 정치 이념을 익힌 관리를 길러 왕권을 뒷받침하려는 것이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신문왕692년

    문무왕의 아들, 통일 신라의 제31대 왕. 김흠돌의 난을 누르고 국학·9주 5소경·관료전으로 왕권을 굳혔다

  • 설총

    원효의 아들. 이두를 정리해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했고,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바쳤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교육 기관의 변천372년 – 1943년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