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50년 – 1913년
서상돈
대구의 상인. 김광제와 함께 국채 보상 운동을 제안했다
독립 협회에 참여했던 천주교 신자 상인이다. 1907년 대구 광문사의 사장 김광제와 함께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고 제안했다. 금연·금주로 돈을 모으자는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 등의 후원으로 전국에 퍼졌으나, 통감부가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방해해 실패했다.
대구의 상인. 김광제와 함께 국채 보상 운동을 제안했다
독립 협회에 참여했던 천주교 신자 상인이다. 1907년 대구 광문사의 사장 김광제와 함께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고 제안했다. 금연·금주로 돈을 모으자는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 등의 후원으로 전국에 퍼졌으나, 통감부가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방해해 실패했다.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이 모은 돈으로 갚자는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