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언론인.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를 펴냈다.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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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이 사장이라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를 펼 수 있었다.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이 모은 돈으로 갚자는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대구의 상인. 김광제와 함께 국채 보상 운동을 제안했다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