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독립 협회에서 활동했다. 민립 대학 기성회를 이끌고 신간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1881년 조사 시찰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박정양을 따라 주미 공사관에서 일했다. 독립 협회에서 만민 공동회를 이끌었고, 개혁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며 기독교인이 되어 YMCA에서 청년 운동을 폈다. 1920년대 민립 대학 기성회를 이끌며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 모금 운동을 벌였다.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함께 만든 신간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으나 그해 세상을 떠났고,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