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쉐량
다른 이름: 장학량, 張學良
봉천 군벌 장쭤린의 아들로, 아버지가 일본군에 폭살되자 국민 정부에 합류했다. 1936년 시안 사건을 일으켜 장제스에게 항일을 요구했다
랴오닝에서 장쭤린의 맏아들로 태어나 "소수(少帥)"라 불렸다. 젊어서 펑톈군의 항공대와 정예 부대를 이끌었다. 1928년 아버지가 죽자 둥베이의 실권을 이어받았고, 일본의 회유를 뿌리치고 국민 정부 쪽에 섰다. 만주 사변 때 싸우지 않고 물러나 "부저항 장군"이라는 비난을 들었고, 한동안 유럽을 돌아보았다. 시안 사건 뒤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으로 옮겨져 연금 생활을 했으며, 1990년에 풀려나 하와이에서 100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