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mbus20032000 · CC BY-SA 4.0 · 원본
성종의 맏아들. 1498년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조의제문을 빌미로 무오사화를 일으켰고, 1504년 어머니 폐비 윤씨가 죽은 일을 들추어 갑자사화를 일으켜 훈구와 사림을 함께 죽였다. 경연과 사간원을 없애고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었으며, 자신을 비난하는 한글 글이 나돌자 한글 사용을 막았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쫓겨나 강화 교동에 유배되었다가 죽어 왕자의 칭호인 군으로 남았다.

Tombus20032000 · CC BY-SA 4.0 · 원본
성종의 맏아들. 1498년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조의제문을 빌미로 무오사화를 일으켰고, 1504년 어머니 폐비 윤씨가 죽은 일을 들추어 갑자사화를 일으켜 훈구와 사림을 함께 죽였다. 경연과 사간원을 없애고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었으며, 자신을 비난하는 한글 글이 나돌자 한글 사용을 막았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쫓겨나 강화 교동에 유배되었다가 죽어 왕자의 칭호인 군으로 남았다.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이 세조를 비난한 글이라 하여, 연산군이 김일손 등 사림을 죽이고 귀양 보냈다. 첫 사화다.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얽힌 신하들을 대거 죽였다. 폭정이 심해져 2년 뒤 반정이 일어났다.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웠다(중종).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쫓겨났다.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