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 감합 무역
다른 이름: 감합 무역, 감합선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명에서 "일본 국왕"으로 책봉받고 왜구를 단속하는 대가로, 1404년부터 감합(확인용 부절)을 지닌 배만 명과 조공 무역을 하게 되었다.

Unknown (Inscription attributed to Asukai Masachika ) · Public domain · 원본
명은 해금으로 민간 무역을 막고 조공 사절의 무역만 허락했으며, 일본에 왜구 단속을 요구했다. 남북조를 통일한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1401년 명에 사신을 보내 이듬해 "일본 국왕"으로 책봉받았고, 1404년 첫 감합선이 명에 갔다. 감합은 명이 발급한 부절로, 이를 맞춰 보아 정식 사절선을 해적선과 가렸다.
일본은 구리·유황·칼·부채 등을 가져가고, 명의 동전(영락통보)·생사·비단·서적을 들여왔다. 이 동전은 일본의 화폐 경제를 키웠다. 무역은 4대 쇼군이 한때 끊었다가 1432년 다시 열렸고, 뒤에는 호소카와씨·오우치씨 같은 다이묘가 실권을 쥐고 다투다(1523 닝보의 난) 16세기 중반 끝났다.
조선도 일본과의 교린 속에 왜구를 달래려 1426년 부산포·제포·염포의 3포를 열고, 1443년 계해약조로 쓰시마 도주의 무역선(세견선)을 해마다 50척으로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