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랑제브와 무굴 제국의 쇠퇴
다른 이름: 알람기르, 마라타 왕국 성립
아우랑제브는 무굴 제국의 영토를 가장 넓혔으나 지즈야를 되살리는 등 엄격한 이슬람 정책으로 힌두교도·시크교도의 반발을 샀다. 그가 죽은 뒤 제국은 빠르게 흩어졌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샤자한이 병들자 네 아들이 황위를 다투었고, 1658년 셋째 아우랑제브가 형 다라 시코를 꺾고 아버지를 가둔 뒤 즉위했다. 독실한 수니파였던 그는 이슬람법에 따른 통치를 내세워 1679년 비무슬림에게 지즈야를 다시 걷고 일부 힌두 사원을 헐었다. 1675년에는 시크교의 아홉째 구루 테그 바하두르를 처형했다.
그는 데칸의 비자푸르(1686)·골콘다(1687)를 정복해 제국을 가장 넓혔으나, 서인도에서는 시바지가 1674년 마라타 왕국을 세워 맞섰다. 아우랑제브는 말년 25년 남짓을 데칸 전쟁터에서 보내며 재정을 소모했고, 라지푸트와 시크교도도 등을 돌렸다. 1707년 그가 죽자 지방 총독들이 독립하고 마라타가 세력을 넓혔으며, 1739년에는 이란의 나디르 샤가 델리를 약탈했다. 이 틈을 영국과 프랑스의 동인도 회사가 파고들었다. 그가 즉위한 이듬해 조선에서는 예송(1659)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