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58 – 1707년

아우랑제브와 무굴 제국의 쇠퇴

다른 이름: 알람기르, 마라타 왕국 성립

아우랑제브는 무굴 제국의 영토를 가장 넓혔으나 지즈야를 되살리는 등 엄격한 이슬람 정책으로 힌두교도·시크교도의 반발을 샀다. 그가 죽은 뒤 제국은 빠르게 흩어졌다.

칼을 든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알람기르) — 1700년 무렵의 무굴 회화
칼을 든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알람기르) — 1700년 무렵의 무굴 회화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샤자한이 병들자 네 아들이 황위를 다투었고, 1658년 셋째 아우랑제브가 형 다라 시코를 꺾고 아버지를 가둔 뒤 즉위했다. 독실한 수니파였던 그는 이슬람법에 따른 통치를 내세워 1679년 비무슬림에게 지즈야를 다시 걷고 일부 힌두 사원을 헐었다. 1675년에는 시크교의 아홉째 구루 테그 바하두르를 처형했다.

그는 데칸의 비자푸르(1686)·골콘다(1687)를 정복해 제국을 가장 넓혔으나, 서인도에서는 시바지가 1674년 마라타 왕국을 세워 맞섰다. 아우랑제브는 말년 25년 남짓을 데칸 전쟁터에서 보내며 재정을 소모했고, 라지푸트와 시크교도도 등을 돌렸다. 1707년 그가 죽자 지방 총독들이 독립하고 마라타가 세력을 넓혔으며, 1739년에는 이란의 나디르 샤가 델리를 약탈했다. 이 틈을 영국과 프랑스의 동인도 회사가 파고들었다. 그가 즉위한 이듬해 조선에서는 예송(1659)이 벌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65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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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무굴 제국
마라타 동맹 · 성립

관련 인물

  • 아우랑제브1618년 – 1707년

    군주 · 무굴 제국의 6대 황제(재위 1658–1707). 영토를 가장 넓혔으나 엄격한 이슬람 정책으로 힌두교도·시크교도의 반발을 샀다

  • 시바지1630년 – 1680년

    관련자 · 인도 데칸의 마라타 왕국을 세운 군주(재위 1674–1680). 무굴 제국에 맞서 힌두 왕국을 일으켰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32년 타지마할 건립
이후 사건
1756년 7년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이슬람 제국의 번영과 대서양 세계1500년 – 1800년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