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309 ~ 1377년

아비뇽 유수

다른 이름: 교황의 바빌론 유수, 아비뇽 교황청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청이 로마를 떠나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 머물며 프랑스 왕의 영향을 받았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부른다.

아비뇽 교황청 궁전 — 14세기 교황들이 지은 요새 같은 궁전, 2012년
아비뇽 교황청 궁전 — 14세기 교황들이 지은 요새 같은 궁전, 2012년

Acediscovery · CC BY 4.0 · 원본

아나니 사건 뒤 1305년 프랑스 출신의 클레멘스 5세가 교황에 뽑혔다. 그는 로마로 가지 않고 1309년 론강 가의 아비뇽에 자리 잡았고, 이후 일곱 명의 교황이 모두 프랑스인으로 70년 가까이 그곳에 머물렀다. 클레멘스 5세는 필리프 4세의 요구에 따라 성전 기사단을 해산했다(1312). 페트라르카 등은 이를 고대 유대인이 바빌론에 끌려간 일에 빗대어 "교황의 바빌론 유수"라 불렀다.

교황청은 거대한 궁전을 짓고 세금 제도를 정비했지만, 교황이 프랑스 왕의 손에 놓였다는 비판과 성직 매매 같은 부패로 권위가 떨어졌다. 1377년 그레고리우스 11세가 로마로 돌아갔으나 이듬해 교회의 대분열이 일어났다. 이 무렵 원에 머물던 고려의 충선왕은 연경에 만권당을 세워(1314) 이제현 등이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게 했다.

지도에서 보기

130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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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교황령
프랑스
관련 장소
아비뇽 교황청 궁전, 로마

관련 인물

  • 필리프 4세1268년 – 1314년

    관련자 · 1285~1314년의 프랑스 왕(미남왕). 삼부회를 열어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맞섰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게 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308년 단테의 『신곡』
이후 사건
1337년 백년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1077년 – 151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