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308 ~ 1321년 무렵

단테의 『신곡』

다른 이름: 신곡, 신성 희극

피렌체에서 쫓겨난 시인 단테가 1308년 무렵부터 1321년까지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말로 『신곡』을 써서, 이탈리아어 문학과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

『신곡』을 든 단테 — 왼쪽에 지옥, 뒤에 연옥의 산, 오른쪽에 피렌체.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 1465년, 피렌체 대성당
『신곡』을 든 단테 — 왼쪽에 지옥, 뒤에 연옥의 산, 오른쪽에 피렌체.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 1465년, 피렌체 대성당

Domenico di Michelino / After Alesso Baldovinetti · Public domain · 원본

피렌체의 정치가였던 단테는 정쟁에 밀려 1302년 고향에서 쫓겨났다. 떠돌이 생활 속에 쓴 『신곡』은 단테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로, 중세의 크리스트교 세계관을 담으면서도 고대 시인을 존경하고 현실의 교황과 정치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학자의 말인 라틴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쓰던 토스카나 말로 쓰여 오늘날 이탈리아어의 바탕이 되었고, 페트라르카·보카치오와 함께 르네상스 문학의 선구가 되었다. 이 무렵 고려의 이제현은 원의 수도에서 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익혔다.

지도에서 보기

1308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피렌체 공화국 (메디치 공국)
관련 장소
피렌체

관련 인물

  • 단테1265년 – 1321년

    저자 · 피렌체의 시인.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말로 『신곡』을 써 이탈리아 문학과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271년 마르코 폴로의 원 여행
이후 사건
1309년 아비뇽 유수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1077년 – 151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