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후 전투
1619년 누르하치의 후금이 네 길로 쳐들어온 명군과 강홍립의 조선군을 사르후 일대에서 차례로 무찔렀다. 이 싸움으로 명과 후금의 형세가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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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이 푸순을 빼앗자 명은 1619년 양호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10만 명 안팎의 군대를 네 길로 나눠 후금의 도읍 허투알라로 보냈다.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낸 명의 요구로 조선도 강홍립이 이끄는 1만 명 남짓을 보내 류정의 동로군에 붙였다.
누르하치는 "너희는 여러 길로 오지만 나는 한 길로 간다"며 팔기를 한데 모아, 사르후에서 두송의 서로군을 먼저 무찌르고 며칠 사이에 마림의 북로군과 류정의 동로군을 차례로 깨뜨렸다. 조선군은 부차(심하) 일대에서 크게 꺾였고 강홍립은 남은 군사와 함께 후금에 항복했다.
이 싸움으로 명과 후금의 형세가 뒤바뀌어, 후금은 1621년 랴오양·선양을 차지하고 랴오둥을 손에 넣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명을 받드는 서인이 인조반정(1623)으로 그를 몰아내고 친명배금을 내세우면서 후금의 침입(정묘호란)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