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560년 – 1627년

강홍립

광해군 때 명의 요청으로 후금 정벌에 나선 조선군의 도원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패하자 후금에 항복했다

1619년 1만여 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명군과 함께 후금을 쳤으나, 사르후(심하) 전투에서 명군이 크게 지자 후금에 항복했다. 광해군이 형세를 보아 행동하라고 일렀다고 전한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군과 함께 돌아와 강화를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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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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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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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9년사르후 전투지휘관

    1619년 누르하치의 후금이 네 길로 쳐들어온 명군과 강홍립의 조선군을 사르후 일대에서 차례로 무찔렀다. 이 싸움으로 명과 후금의 형세가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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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을 후금 정벌에 보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크게 지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

함께 나오는 인물

  • 누르하치 (청 태조)1559년 – 1626년

    건주 여진의 추장으로 여진을 통합해 1616년 후금을 세운 칸(재위 1616–1626). 팔기제와 만주 문자를 만들고 사르후 전투에서 명을 꺾었다

  • 만력제 (명 신종)1563년 – 1620년

    명의 황제(재위 1572–1620). 장거정이 죽은 뒤 오래 조정에 나오지 않았고, 임진왜란 파병 등 만력 3대 정벌과 사르후 패전으로 명이 기울었다

  • 광해군1575년 – 1641년

    조선 제15대 왕. 대동법을 시작하고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붕당 정치의 전개1498년 – 1863년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