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16년 2월 21일 – 12월 18일
베르됭 전투
독일군이 프랑스군의 힘을 빼려고 베르됭 요새 지대를 열 달 가까이 공격했으나, 페탱이 이끈 프랑스군이 버텨 냈다. 양쪽 사상자가 70만 명 안팎에 이르렀다.

French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1916년 2월 21일 독일군 참모 총장 팔켄하인은 프랑스가 결코 내줄 수 없는 요새 도시 베르됭을 쳐서 프랑스군이 피를 흘려 지치게 하려 했다. 엄청난 포격 끝에 두오몽 요새가 곧 떨어졌으나, 방어를 맡은 페탱은 단 하나 남은 보급로("성스러운 길")로 병력과 물자를 쉬지 않고 실어 날라 버텼다.
"그들은 지나가지 못한다"는 구호 아래 프랑스군은 부대를 번갈아 투입했고, 7월 솜 전투가 시작되자 독일의 공세는 꺾였다. 프랑스군은 10월 두오몽 요새를 되찾았고 12월 전투가 끝났다. 열 달 동안 양쪽에서 70만 명 안팎이 죽거나 다쳤으나 전선은 거의 그대로였다. 베르됭은 소모전의 상징이자 프랑스인에게 끝까지 버틴 전투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