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16년 2월 21일 – 12월 18일

베르됭 전투

독일군이 프랑스군의 힘을 빼려고 베르됭 요새 지대를 열 달 가까이 공격했으나, 페탱이 이끈 프랑스군이 버텨 냈다. 양쪽 사상자가 70만 명 안팎에 이르렀다.

베르됭 304 고지의 참호에 몸을 숨긴 프랑스 제87 연대 병사들 — 1916년
베르됭 304 고지의 참호에 몸을 숨긴 프랑스 제87 연대 병사들 — 1916년

French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1916년 2월 21일 독일군 참모 총장 팔켄하인은 프랑스가 결코 내줄 수 없는 요새 도시 베르됭을 쳐서 프랑스군이 피를 흘려 지치게 하려 했다. 엄청난 포격 끝에 두오몽 요새가 곧 떨어졌으나, 방어를 맡은 페탱은 단 하나 남은 보급로("성스러운 길")로 병력과 물자를 쉬지 않고 실어 날라 버텼다.

"그들은 지나가지 못한다"는 구호 아래 프랑스군은 부대를 번갈아 투입했고, 7월 솜 전투가 시작되자 독일의 공세는 꺾였다. 프랑스군은 10월 두오몽 요새를 되찾았고 12월 전투가 끝났다. 열 달 동안 양쪽에서 70만 명 안팎이 죽거나 다쳤으나 전선은 거의 그대로였다. 베르됭은 소모전의 상징이자 프랑스인에게 끝까지 버틴 전투로 기억된다.

지도에서 보기

1916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프랑스 · 승전국
독일 · 패전국

관련 인물

  • 필리프 페탱1856년 – 1951년

    지휘관 · 프랑스의 장군. 1916년 베르됭 방어를 이끌어 영웅이 되었으나, 1940년 독일에 항복한 뒤 비시 정부의 수반이 되어 전후 반역죄로 종신형을 받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5년 갈리폴리 전투
이후 사건
1916년 유틀란트 해전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1908년 – 1923년

    발칸반도의 위기에서 시작해 참호전과 총력전으로 네 제국을 무너뜨린 전쟁, 그 속에서 일어나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낳은 러시아 혁명, 그리고 민족 자결과 국제 연맹을 내건 베르사유 체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