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의 제네바 종교 개혁
다른 이름: 칼뱅주의, 칼뱅파, 예정설, 장로교
1541년 제네바로 돌아온 칼뱅은 엄격한 신앙 공동체를 세우고 예정설과 직업 소명설을 가르쳤다. 칼뱅파는 상공업자의 지지를 받아 위그노·고이센·청교도·장로교로 퍼졌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가 루터와 따로 개혁을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쫓겨난 칼뱅은 1536년 바젤에서 『그리스도교 강요』를 펴냈고, 제네바의 개혁을 돕다가 한때 쫓겨났으나 1541년 9월 다시 돌아왔다. 그는 교회 규율을 만들고 목사와 장로가 시민의 신앙과 생활을 감독하는 컨시스토리를 두어, 춤과 도박까지 다스리는 엄격한 신정 정치를 폈다.
칼뱅은 구원받을 사람은 하느님이 미리 정해 두었다는 예정설을 가르치며, 근면하게 일해 부를 쌓는 것은 그 소명을 다하는 표지라고 보았다. 이 직업 소명설은 상공업 시민층의 지지를 받았고, 뒤에 막스 베버는 여기서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를 찾았다. 칼뱅파는 감독 대신 장로가 교회를 이끄는 장로제를 택했다.
제네바 아카데미(1559)에서 배운 목사들을 통해 칼뱅파는 프랑스의 위그노, 네덜란드의 고이센, 스코틀랜드의 장로파(녹스), 잉글랜드의 청교도로 퍼졌다. 같은 무렵 조선에서는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1543)을 세워 사림의 서원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