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492년 4월 17일

산타페 협약

그라나다를 정복한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콜럼버스의 서쪽 항해를 후원하기로 하고, 그에게 줄 칭호와 몫을 정했다.

산타페 협약 문서 — 에스파냐 세비야 인디아스 고문서관
산타페 협약 문서 — 에스파냐 세비야 인디아스 고문서관

Jl FilpoC · CC BY-SA 4.0 · 원본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건너면 아시아에 닿는다며 10년 가까이 후원자를 찾았다. 포르투갈의 주앙 2세는 그가 지구의 크기를 너무 작게 잡았다며 거절했고, 에스파냐의 학자들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그 계산은 실제로 틀렸다 —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아메리카가 없었다면 배는 닿기 전에 식량이 떨어졌을 것이다.

1492년 1월 그라나다가 함락되자 이사벨 여왕은 그를 다시 불렀다. 4월 17일 그라나다 앞 진영 도시 산타페에서 맺은 협약으로, 콜럼버스는 찾아낸 땅의 제독·부왕·총독이 되고 그곳에서 나는 수익의 10분의 1을 받기로 했다. 지나치게 큰 약속이었던 이 조건은 뒤에 콜럼버스와 왕실 사이의 긴 다툼거리가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49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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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에스파냐 · 후원국
관련 장소
산타페 (그라나다)

관련 인물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년 – 1506년

    핵심 인물 · 제노바 출신의 항해가. 에스파냐의 후원으로 1492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닿았다

  • 이사벨 1세1451년 – 1504년

    군주 · 카스티야의 여왕.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함께 에스파냐를 다스리며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했다

  • 페르난도 2세1452년 – 1516년

    군주 · 아라곤의 왕.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결혼해 에스파냐를 하나로 묶고, 그라나다를 정복해 레콩키스타를 끝냈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항해 시대1415년 – 1600년

    세우타 점령부터 마닐라 갤리온까지 — 유럽의 배가 대양을 건너 세계를 하나의 바닷길로 이은 2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