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492년 4월 17일
산타페 협약
그라나다를 정복한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콜럼버스의 서쪽 항해를 후원하기로 하고, 그에게 줄 칭호와 몫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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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건너면 아시아에 닿는다며 10년 가까이 후원자를 찾았다. 포르투갈의 주앙 2세는 그가 지구의 크기를 너무 작게 잡았다며 거절했고, 에스파냐의 학자들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그 계산은 실제로 틀렸다 —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아메리카가 없었다면 배는 닿기 전에 식량이 떨어졌을 것이다.
1492년 1월 그라나다가 함락되자 이사벨 여왕은 그를 다시 불렀다. 4월 17일 그라나다 앞 진영 도시 산타페에서 맺은 협약으로, 콜럼버스는 찾아낸 땅의 제독·부왕·총독이 되고 그곳에서 나는 수익의 10분의 1을 받기로 했다. 지나치게 큰 약속이었던 이 조건은 뒤에 콜럼버스와 왕실 사이의 긴 다툼거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