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631 – 647년

천리장성 축조

당의 침입에 대비해 고구려가 북쪽 부여성에서 남쪽 비사성까지 천여 리의 성을 쌓았다. 16년이 걸렸다.

백암성 성벽 — 천리장성 방어선의 요동 고구려 성, 랴오닝성 랴오양
백암성 성벽 — 천리장성 방어선의 요동 고구려 성, 랴오닝성 랴오양

Rincewind42 [2] · CC BY-SA 3.0 · 원본

618년 수를 이은 당은 처음에 고구려와 화친했다. 그러나 631년 당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가 수와의 전쟁 뒤 세운 경관(전사한 수 병사의 뼈를 쌓은 승전 기념물)을 헐자, 영류왕은 당의 침입에 대비해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공사는 보장왕 때인 647년에 끝났다. 642년 공사 감독을 맡은 연개소문은 그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쥐었다. 고려 덕종·정종 때 압록강에서 도련포까지 쌓은 천리장성과는 다른 성이다.

지도에서 보기

63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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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구려 — 영류왕

관련 인물

  • 연개소문665년

    참여자 · 고구려 말의 대막리지. 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당에 강경하게 맞섰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629년 현장의 인도 구법 여행
이후 사건
633년 첨성대 건립

이 사건이 든 테마

  • 삼국 통일 전쟁598년 – 676년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까지 — 동아시아가 한반도에서 맞붙은 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