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910년

클뤼니 수도원과 교회 개혁 운동

다른 이름: 클뤼니 개혁

910년 프랑스 부르고뉴에 세워진 클뤼니 수도원은 세속 권력에서 벗어나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결혼을 비판하며 교회 개혁 운동을 이끌었다.

하늘에서 본 클뤼니 수도원 — 거대한 성당은 프랑스 혁명 뒤 대부분 헐리고 일부만 남았다
하늘에서 본 클뤼니 수도원 — 거대한 성당은 프랑스 혁명 뒤 대부분 헐리고 일부만 남았다

Carsten Steger · CC BY-SA 4.0 · 원본

봉건 사회에서 교회와 수도원은 큰 땅을 가진 영주이기도 해서, 세속 제후가 성직자를 임명하고 돈을 받고 성직을 파는 일(성직 매매)이 흔했고 결혼한 성직자도 많았다. 910년 아키텐 공 기욤이 세운 클뤼니 수도원은 제후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교황에게 직접 속하게 하여 베네딕투스 규칙을 엄격히 지켰다.

클뤼니는 유럽 곳곳에 딸린 수도원을 거느리며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결혼을 비판했고, 이 개혁 정신은 11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교회 개혁과 서임권 투쟁으로 이어졌다. 같은 때 한반도는 후백제·후고구려가 맞선 후삼국 시대였다.

지도에서 보기

910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서프랑크 왕국
관련 장소
클뤼니 수도원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과 비잔티움476년 – 1077년

    서로마 제국 멸망에서 카노사의 굴욕까지 — 프랑크 왕국과 교황이 이룬 서유럽 봉건 사회, 로마를 이은 비잔티움, 동서로 갈라진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