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과 비잔티움
서로마 제국 멸망에서 카노사의 굴욕까지 — 프랑크 왕국과 교황이 이룬 서유럽 봉건 사회, 로마를 이은 비잔티움, 동서로 갈라진 교회

Ronan Reinart · CC BY-SA 3.0 · 원본
서로마 제국 멸망에서 카노사의 굴욕까지 — 프랑크 왕국과 교황이 이룬 서유럽 봉건 사회, 로마를 이은 비잔티움, 동서로 갈라진 교회

Ronan Reinart · CC BY-SA 3.0 · 원본
| 연도 | 나라 | 사건 | 핵심 |
|---|---|---|---|
| 476 | 서로마 제국 | 서로마 제국 멸망 | 오도아케르, 게르만 왕국들 성립 |
| 481 · 496 | 프랑크 왕국 | 클로비스의 개종 | 가톨릭 개종 → 로마 교회와 손잡음 |
| 527–565 | 비잔티움 |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 로마법 대전, 옛 영토 회복, 하기아 소피아 |
| 529 | 서유럽 교회 | 베네딕트 수도회 | 청빈·정결·순명, "기도하고 일하라" |
| 610–641 | 비잔티움 | 헤라클레이오스의 개혁 | 군관구제·둔전병제, 그리스어 공용어 |
| 726 | 비잔티움 | 성상 파괴령 | 레오 3세 → 교황 반발, 프랑크와 제휴 |
| 751 · 756 | 프랑크 왕국 | 카롤링거 왕조·피핀의 기증 | 교황령의 시작 |
| 793–11세기 | 노르만족 | 노르만(바이킹)의 이동 | 노르망디·키예프 루스·시칠리아 |
| 800 |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 | 서유럽 세계 성립, 카롤링 르네상스 |
| 843 · 870 | 프랑크 왕국 | 베르됭·메르센 조약 |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기원 |
| 9–13세기 | 서유럽 | 봉건제·장원제 | 쌍무적 계약, 농노·불입권 |
| 910 | 서유럽 교회 | 클뤼니 수도원 | 성직 매매·성직자 결혼 비판 |
| 962 | 독일 | 오토 1세의 대관 | 신성 로마 제국 (–1806) |
| 988 | 키예프 루스 | 블라디미르 1세의 개종 | 그리스 정교·키릴 문자 수용 |
| 1054 | 교회 | 교회의 동서 분열 | 로마 가톨릭 ↔ 그리스 정교 |
| 1077 | 신성 로마·교황 | 카노사의 굴욕 | 서임권 투쟁 → 교황권 우위 |
375년 무렵 아시아에서 온 훈족에 밀린 서고트족이 도나우강을 건너 로마 제국으로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여러 게르만족이 로마 땅으로 옮겨 가 나라를 세웠다.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면서 서로마 제국이 끝났다.
481년 무렵 프랑크족의 왕이 된 클로비스는 갈리아 대부분을 차지해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496년 무렵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북아프리카·이탈리아 등 옛 서로마 땅을 되찾고 로마법 대전을 펴내 로마 제국의 부흥을 꾀했다.
529년 무렵 베네딕투스가 이탈리아 몬테카시노에 수도원을 세우고 청빈·정결·순명과 노동을 강조하는 규칙을 만들어 서유럽 수도원 운동의 본보기가 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니카 반란으로 불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성당을 거대한 돔을 얹은 하기아 소피아로 다시 지어 537년에 봉헌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랑고바르드족의 침입에서 로마를 지키고 앵글로색슨족에게 선교사를 보내, 로마 교회가 서유럽의 정신적 중심이 되는 기초를 놓았다.
헤라클레이오스 황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제국을 군관구(테마)로 나누어 군사령관이 행정까지 맡게 하는 체제로 위기를 넘겼다.
726년 비잔티움 황제 레오 3세가 성상 숭배를 금하면서 시작된 성상 파괴 운동은 로마 교회의 반발을 불러 동서 교회가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피레네산맥을 넘어 북진하던 알안달루스 총독 압드 알라흐만 알가피키의 군대가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프랑크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졌다.
751년 교황의 지지로 카롤링거 왕조를 연 피핀은 756년 랑고바르드족에게서 빼앗은 라벤나 일대를 교황에게 바쳐 교황령의 기초가 되었다.
8세기 말부터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만족(바이킹)이 배를 타고 유럽 곳곳을 약탈하고 정착해, 노르망디 공국·키예프 루스·시칠리아 왕국 등을 세웠다.
서유럽 대부분을 통일한 프랑크 왕 카롤루스는 800년 크리스마스에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에게 서로마 황제의 관을 받았다.
카롤루스 대제의 손자 셋이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을 동·서·중프랑크로 나누었고,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중프랑크의 북부가 다시 나뉘었다.
9세기 무렵부터 서유럽에서는 주군과 봉신이 땅(봉토)과 충성을 주고받는 봉건제와, 영주가 농노를 부려 장원을 경영하는 장원제가 자리 잡았다.
노르만족의 일파인 루스가 862년 무렵 노브고로드에 자리 잡고, 882년 올레그가 키이우로 중심을 옮겨 동슬라브족의 나라 키예프 루스를 세웠다.
910년 프랑스 부르고뉴에 세워진 클뤼니 수도원은 세속 권력에서 벗어나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결혼을 비판하며 교회 개혁 운동을 이끌었다.
911년 서프랑크 왕 샤를 3세가 노르만족 우두머리 롤로에게 센강 하류의 땅을 주어 노르망디 공국이 생겼다.
마자르족을 물리친 동프랑크(독일) 왕 오토 1세가 962년 로마에서 교황에게 황제의 관을 받아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다.
988년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1세가 비잔티움 황제의 누이와 결혼하며 그리스 정교로 개종해, 루스는 비잔티움 문화권에 들어섰다.
1054년 로마 교황의 사절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하며, 크리스트교는 서쪽의 로마 가톨릭과 동쪽의 그리스 정교로 갈라졌다.
1066년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 해럴드 2세를 무찌르고 왕위에 올라 노르만 왕조를 열었다.
성직자 임명권(서임권)을 두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 다투다 파문당한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가 1077년 1월 카노사성에서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