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조약
다른 이름: 북경 조약
1860년 10–11월 공친왕이 영국·프랑스·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맺었다. 청은 톈진을 열고 주룽반도 남쪽을 영국에 넘겼으며, 중재를 맡은 러시아에 우수리강 동쪽 연해주를 내주었다.

Qing Government, China in conjunction with the Europeans (French, British, Russian) in 1860 · Public domain · 원본
피란한 함풍제를 대신해 베이징에 남은 공친왕은 10월 24일 영국, 25일 프랑스와 베이징 조약을 맺었다. 청은 톈진 조약을 비준하고, 톈진을 새로 열고, 배상금을 늘리고, 주룽반도 남쪽 끝을 영국에 넘겼다. 외국 공사가 베이징에 머물고 선교사가 내지에서 포교하는 것도 인정했다.
러시아 공사 이그나티예프는 영·프 연합군이 베이징을 떠나도록 중재했다며 그 대가를 요구했다. 11월 14일 청은 러시아와도 베이징 조약을 맺어 아이훈 조약을 확인하고, 우수리강 동쪽 연해주 약 40만 ㎢를 넘겼다. 러시아는 그해 여름 그 남쪽 끝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세워 두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두만강 하류에서 조선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청은 이듬해 외교를 맡는 총리각국사무아문을 두고 서양의 기술을 배우는 양무운동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