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제와 서태후의 죽음
다른 이름: 선통제 즉위, 광서제 독살
1908년 11월 14일 유폐된 광서제가 죽고 이튿날 서태후가 죽었다. 세 살의 푸이가 선통제로 즉위하고 아버지 재풍이 섭정이 되어, 이듬해 위안스카이를 내쫓았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무술정변 뒤 10년 동안 중난하이의 섬 잉타이에 갇혀 지낸 광서제는 1908년 11월 14일 서른일곱에 숨졌고, 바로 다음 날 일흔셋의 서태후도 세상을 떠났다. 2008년 광서제의 유해를 조사한 결과 치사량을 크게 넘는 비소가 나와, 그가 독살되었다는 의심이 사실로 굳어졌다.
서태후는 죽기 전 광서제의 조카인 세 살의 푸이를 후계자로 정했다. 푸이는 선통제로 즉위했고, 아버지 순친왕 재풍이 섭정왕이 되었다. 재풍은 1909년 1월 형 광서제를 배신했다는 위안스카이를 「다리 병」을 핑계로 고향에 돌려보내고, 군권을 만주족 황족에게 모았다.
그해 여름 청은 9년 뒤에 헌법을 펴겠다는 「흠정 헌법 대강」을 내놓았으나, 황제의 권한을 일본 메이지 헌법보다 더 크게 적어 입헌파를 실망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