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 처형

1649년 1월 30일 의회파의 특별 법정이 반역죄로 판결한 찰스 1세가 런던 화이트홀에서 처형되었다.

화이트홀 뱅퀴팅 하우스 앞에서 처형되는 찰스 1세 — 1649년 무렵의 그림
화이트홀 뱅퀴팅 하우스 앞에서 처형되는 찰스 1세 — 1649년 무렵의 그림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내전에 진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와 손잡고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그를 협상 상대로 남기려던 장로파 의원들이 1648년 12월 군대에 쫓겨나자(프라이드의 숙청), 남은 의회(잔부 의회)가 특별 법정을 세워 왕을 "폭군·반역자"로 재판했다. 찰스 1세는 법정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사형 판결을 받았고, 1월 30일 뱅퀴팅 하우스 앞에서 목이 잘렸다.

백성이 왕을 재판해 처형한 이 일은 유럽의 군주들을 놀라게 했다. 의회는 3월에 왕정과 상원을 없앴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효종이 즉위해 북벌을 준비했다.

지도에서 보기

164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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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잉글랜드
관련 장소
화이트홀 뱅퀴팅 하우스

관련 인물

  • 찰스 1세1600년 – 1649년

    군주 · 1625~1649년의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왕. 의회와 맞서다 청교도 혁명을 불렀고, 재판을 받아 처형되었다

  • 크롬웰1599년 – 1658년

    주도자 · 청교도 혁명을 이끈 잉글랜드의 군인·정치가. 의회파 군대로 왕당파를 꺾고 공화정을 세운 뒤 호국경이 되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과학 혁명·계몽사상과 영국 혁명1543년 – 1796년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의 과학 혁명,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의회 정치, 그리고 이성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계몽사상 —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의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