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혁명
다른 이름: 잉글랜드 내전, 영국 내전, 청교도 혁명과 크롬웰, 왕정복고
1642년 의회파와 왕당파의 내전이 벌어져, 크롬웰이 이끈 의회파가 이기고 1649년 찰스 1세를 처형한 뒤 공화정을 세웠다. 1660년 왕정이 되살아날 때까지 이어진 잉글랜드의 혁명이다.

After Samuel Cooper · Public domain · 원본
의회 없이 다스리던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 영국 국교회식 예배를 강요하다 반란이 일어나자 전쟁 비용을 얻으려 1640년 의회를 다시 열었다. 장기 의회는 왕의 실정을 비판했고, 1642년 8월 왕이 군대를 일으키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귀족과 국교도 중심의 왕당파에 맞선 의회파에는 청교도가 많은 젠트리와 상공업자가 섰다.
의회파의 크롬웰은 철기대와 신형군을 이끌고 1645년 네이즈비 전투에서 왕당파를 크게 무찔렀다. 의회 안의 장로파를 몰아낸 독립파는 1649년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과 상원을 없애 공화정을 선포했다. 크롬웰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정복했는데, 아일랜드에서는 드로이다·웩스퍼드 학살과 가톨릭 지주의 토지 몰수로 깊은 상처를 남겼다. 또 1651년 항해법을 만들어 네덜란드의 중계 무역을 막아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불렀다. 1653년 의회를 해산하고 호국경이 된 그는 군대에 기대어 엄격한 청교도 윤리를 강요하는 독재 정치를 폈다.
1658년 크롬웰이 죽자 공화정은 흔들렸고, 1660년 의회가 찰스 2세를 맞아들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청교도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으나 의회 없이 다스릴 수 없다는 원칙을 남겨 명예혁명의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