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기원전 109 – 108년

고조선 멸망

다른 이름: 한사군 설치, 한 군현 설치

한 무제의 침공으로 왕검성이 함락되고 고조선이 멸망했다. 한은 그 땅에 낙랑군 등 네 군을 두었다.

낙랑 무덤에서 나온 녹유 향로 — 고조선 멸망 뒤 한이 둔 낙랑군의 유물, 도쿄국립박물관
낙랑 무덤에서 나온 녹유 향로 — 고조선 멸망 뒤 한이 둔 낙랑군의 유물, 도쿄국립박물관

Daderot · Public domain · 원본

고조선이 한과 진(辰)의 직접 교역을 막자 한 무제는 기원전 109년 수륙 양면으로 쳐들어왔다. 우거왕은 왕검성에서 1년 가까이 버텼지만, 지배층이 갈라져 우거왕이 살해되고 이듬해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한은 그 땅에 낙랑·진번·임둔·현도 네 군, 곧 한 군현(흔히 한사군이라 부른다)을 두었다. 진번·임둔은 곧 없어졌고, 낙랑군은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게 쫓겨날 때까지 남았다. 한 군현이 들어선 뒤 법 조항이 60여 조로 늘고 풍속이 각박해졌다고 한다. 고조선의 사회 모습은 한서 지리지에 전하는 8조법(범금 8조) 가운데 세 조목(사람을 죽이면 죽인다,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하면 노비로 삼는다)으로 알 수 있다.

지도에서 보기

기원전 10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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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조선 · 멸망
한 · 침공국 — 무제
관련 장소
왕검성

관련 인물

  • 우거왕기원전 108년

    군주 · 위만의 손자, 고조선의 마지막 왕. 한의 침공에 1년 가까이 맞서다 살해되었다

  • 한 무제기원전 156년 – 기원전 87년

    군주 · 한의 제7대 황제.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땅에 군현을 두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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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39년 장건의 서역 파견과 비단길
이후 사건
기원전 91년 사마천의 『사기』

이 사건이 든 테마

  • 고대 중국과 인도기원전 770년 – 220년

    춘추 전국의 제자백가에서 진·한의 통일 제국까지, 석가모니에서 마우리아·쿠샨 왕조까지 —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문명의 틀이 잡힌 천 년

  • 평양기원전 194년 – 2007년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