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

| 시대 | 사건 | 내용 |
|---|---|---|
| 고조선 | 위만의 집권 | 왕검성 도읍, 철기 확산, 중계 무역 |
| 고조선 | 고조선 멸망 | 한 무제 공격, 왕검성 함락 → 낙랑군 |
| 고구려 | 낙랑군 축출 | 미천왕(313), 대동강 유역 차지 |
| 백제·고구려 | 평양성 전투 | 근초고왕 공격, 고국원왕 전사 |
| 고구려 | 평양 천도 | 장수왕(427), 남진 정책 |
| 고구려 | 고구려 멸망 | 나당 연합군 평양성 함락, 안동 도호부 |
| 고려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칭제건원·금 정벌, 김부식이 진압 |
| 고려 | 조위총의 난 | 서경 유수, 무신 정권 타도(1174) |
| 조선 | 평양성 탈환 | 조·명 연합군(이여송), 휴정의 승병 |
| 개항기 | 제너럴셔먼호 사건 | 대동강, 평양 관민이 불태움 → 신미양요 |
| 대한제국 | 대성 학교 | 신민회 안창호가 평양에 세움 |
| 일제 강점기 | 물산 장려 운동 | 조만식, 조선 물산 장려회(1920) |
| 광복 이후 | 남북 협상 | 김구·김규식 평양 방문, 단독 정부 반대 |
| 김대중 정부 | 첫 남북 정상 회담 | 6·15 남북 공동 선언 |
| 노무현 정부 | 2차 남북 정상 회담 | 10·4 남북 정상 선언 |
연에서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넘어온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쫓겨난 준왕은 남쪽으로 가 한왕이라 했다.
한 무제의 침공으로 왕검성이 함락되고 고조선이 멸망했다. 한은 그 땅에 낙랑군 등 네 군을 두었다.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을 몰아내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고 대동강 유역을 차지했다.
근초고왕과 태자 근구수가 3만 군사로 고구려 평양성을 쳤다. 성을 지키던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장수왕이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정책을 폈다.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보장왕이 항복하면서 고구려가 멸망했다.
왕건은 호족을 끌어안으면서 견제하는 정책과 북진 정책을 펴고, 죽기 전 후대 왕들에게 훈요 10조를 남겼다.
서경 세력인 묘청·정지상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이끈 관군에 1년 만에 진압되었다.
무신 정권에 맞서 1173년 동북면의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1174년 서경 유수 조위총이 무신 타도를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 원군과 조선군이 평양성을 되찾았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은 남쪽으로 물러났다.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온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약탈하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관민과 함께 배를 불태웠다.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싸웠다. 풍도·성환·평양·황해에서 이긴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의 조선 종주권을 끊고 타이완을 얻었다.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교육·산업을 일으키고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평양 숭의 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비밀 결사 송죽회를 만들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망명 지사의 가족을 도왔다.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우리 손으로 만든 물건을 쓰자는 운동을 벌였다. 1923년 서울에서 전국 조직이 생겨 널리 퍼졌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해 평양에서 북한 지도자들과 회담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분단 뒤 첫 남북 정상 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고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평양에서 두 번째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