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038

서하의 건국

다른 이름: 대하, 탕구트, 경력 화의

탕구트족의 이원호가 1038년 황제를 칭하고 대하(서하)를 세웠다. 서하 문자를 만들고 송과 싸워 1044년 세폐를 받는 화의를 맺었으며, 동서 교역로인 허시 회랑을 쥐었다.

닝샤 인촨 서쪽 허란산 기슭의 서하 왕릉
닝샤 인촨 서쪽 허란산 기슭의 서하 왕릉

Thebrainchamber1 · CC BY-SA 4.0 · 원본

탕구트(당항)족은 당 말부터 오르도스 일대에서 세력을 키워 송과 요 사이에서 실리를 챙겼다. 이원호는 1036년 무렵 한자를 본뜬 서하 문자를 만들게 하고, 1038년 흥경부(오늘 인촨)에서 황제를 칭해 나라 이름을 대하라 했다. 송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1040년부터 삼천구·호수천·정천채 전투에서 거듭 졌다.

1044년 경력 화의로 서하는 송에 형식상 신하를 칭하는 대신, 송이 해마다 은·비단·차를 보내기로 했다. 같은 무렵 요도 송을 압박해 세폐를 늘려 받았다. 북쪽과 서쪽에 모두 세폐를 내게 된 송의 재정·군사 문제는 왕안석의 신법이 나오는 배경이 되었다.

서하는 허시 회랑을 차지해 비단길 교역의 이익을 얻었고 불교 문화를 꽃피웠으나, 1227년 칭기즈 칸의 몽골에 멸망했다.

지도에서 보기

103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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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서하 · 건국
송 — 인종
관련 장소
중흥부 (인촨)

관련 인물

  • 이원호 (서하 경종)1003년 – 1048년

    군주 · 서하의 건국자(재위 1038–1048). 탕구트족을 이끌고 1038년 황제를 칭했으며, 서하 문자를 만들게 하고 송과 싸워 세폐를 받아 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069년 왕안석의 신법

이 사건이 든 테마

  • 송·명과 일본의 무사 정권960년 – 1500년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