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의 신법
다른 이름: 신법, 청묘법, 신법당·구법당
송 신종이 1069년 왕안석을 기용해 청묘법·모역법·시역법·균수법·보갑법·보마법 같은 신법으로 재정과 군사를 다시 세우려 했다. 사마광 등 구법당의 반대로 신·구법당의 당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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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관리·군대가 늘고 요·서하에 세폐를 내느라 재정이 어려웠고(누적된 가난과 약함, 적빈적약), 대지주와 대상인이 농민·중소 상인을 괴롭혔다. 젊은 황제 신종은 1069년 왕안석을 참지정사로 삼아 개혁을 맡겼다.
신법은 크게 부국책과 강병책이다. 청묘법은 춘궁기에 농민에게 낮은 이자로 곡식·돈을 빌려주고, 시역법은 중소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며, 균수법은 나라가 물자를 사고팔아 값을 고르게 했다. 모역법은 부역 대신 돈을 내게 했다. 보갑법은 농가를 묶어 민병을 기르고, 보마법은 농가에 군마를 기르게 했다. 대지주·대상인과 관료의 이익을 건드렸기 때문에 사마광 같은 구법당이 거세게 반대했다.
왕안석은 1076년 물러났고, 1085년 신종이 죽자 사마광이 신법을 거의 폐지했다. 그 뒤 신법당과 구법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당쟁이 깊어져 북송이 약해졌다. 신종은 요를 견제하려 고려와의 국교를 되살려, 1071년 고려 문종이 송에 사신을 보내 관계가 다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