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청군이 개입해 사흘 만에 끝났다.

임오군란 뒤 청의 간섭이 심해지자, 청의 양무운동을 본받아 천천히 개혁하자는 온건 개화파(김홍집·김윤식·어윤중)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빠르게 바꾸자는 급진 개화파(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서재필)가 갈라섰다. 1884년 청불 전쟁으로 청군 절반이 빠지고 일본이 지원을 약속하자,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고종을 경우궁으로 옮기고 민씨 정권의 대신들을 죽인 뒤 14개조 정강을 내놓았다. 청에 대한 조공의 허례를 폐지하고, 문벌을 없애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우며, 지조법을 고치고, 재정은 모두 호조에서 맡고, 혜상공국을 없앤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의 청군이 창덕궁을 공격하고 일본군이 물러나 "3일 천하"로 끝났다. 홍영식은 죽고 김옥균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조선은 일본과 한성 조약을 맺어 배상금을 물었고,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1885)으로 두 나라 군대를 함께 철수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알리기로 했다. 근대 국가를 지향한 첫 정치 개혁이었으나 일본에 기대고 민중의 지지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