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 양계와 지방 제도 정비
다른 이름: 5도 양계, 경기 설치
현종 때 4도호부 8목을 중심으로 지방 제도를 고치고 개경 둘레에 경기를 두었다. 이후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와 국경의 군사 행정 구역인 양계가 갖추어졌다.
성종이 983년 12목에 처음 지방관을 보낸 데 이어, 현종은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 가던 1018년 지방 제도를 고쳐 4도호부·8목을 중심으로 그 아래 주·군·현과 진을 두고, 개경 둘레의 고을을 묶어 경기로 삼았다. 이후 전국은 양광·경상·전라·교주·서해도의 5도와 북쪽 국경의 북계·동계, 곧 양계로 나뉘었다. 5도에는 상주하지 않고 고을을 돌아보는 안찰사를, 양계에는 병마사를 보내고 군사 기지인 진을 두었다. 5도 양계가 온전히 자리 잡은 것은 현종 이후 고려 중기로 본다.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더 많았다. 속현은 가까운 주현의 지방관이 간접적으로 다스리고, 실제 행정은 호장·부호장 같은 향리가 맡아 조세·공물을 거두고 노동력을 징발했다. 이 밖에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주로 농업)과 소(수공업·광업)가 있었다. 그 주민은 양인이지만 일반 군현민보다 세금이 무겁고 거주 이전이 제한되었는데,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의 난(1176)은 이 차별에 맞선 봉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