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40년 8월 1일 발표

대동아 공영권

다른 이름: 동아 신질서, 대동아 회의, 대동아 공영권 구상

1940년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한다"며 일본·만주·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묶는 대동아 공영권을 내걸었다. 실제로는 전쟁 자원을 얻기 위한 침략과 지배의 구호였다.

도쿄의 대동아 회의에 모인 미얀마·만주국·왕징웨이 정권·일본·타이·필리핀·인도 임시 정부 대표 — 1943년 11월
도쿄의 대동아 회의에 모인 미얀마·만주국·왕징웨이 정권·일본·타이·필리핀·인도 임시 정부 대표 — 1943년 11월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중일 전쟁이 길어지자 고노에 내각은 1938년 일본·만주국·중국을 묶는 "동아 신질서"를 내세웠고, 1940년 8월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가 이를 동남아시아까지 넓힌 "대동아 공영권"을 발표했다. 독일이 프랑스·네덜란드를 꺾자 일본은 9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북부에 진주하고 독일·이탈리아와 삼국 동맹을 맺었으며, 미국은 석유 수출 금지로 맞섰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필리핀·말레이·인도네시아·미얀마를 점령했고, 1943년 11월 도쿄에서 만주국·왕징웨이 정권·타이·필리핀·미얀마 대표를 모아 대동아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점령지에서는 석유·고무·쌀을 빼앗고 사람들을 노무자로 끌어갔으며, 일본어와 신사 참배를 강요했다. 한국과 타이완에서는 황국 신민화 정책과 징용·징병이 같은 논리로 강행되었다. 이 구호는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사라졌다.

지도에서 보기

194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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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주도국 — 쇼와 일왕
만주국

관련 인물

  • 고노에 후미마로1891년 – 1945년

    주도자 · 귀족 출신 총리(1937–1939, 1940–1941). 중일 전쟁을 넓히고 국가 총동원법·"동아 신질서"·대정익찬회로 전시 체제를 만들었다. 전범으로 지목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왕징웨이1883년 – 1944년

    참여자 · 쑨원을 따른 국민당의 원로로, 중일 전쟁 중 일본과 손잡고 1940년 난징에 친일 정권(왕징웨이 정부)을 세웠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