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687년 5월(음력)
관료전 지급
신문왕이 문무 관리에게 관료전을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다. 관료전에서는 조세만 거둘 수 있었다.
신문왕은 즉위하던 해(681)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귀족 세력을 숙청해 왕권을 굳혔다. 이어 국학을 세우고(682) 9주 5소경을 갖추는 등 나라의 틀을 다시 짜는 가운데 687년 관료전을 지급했다.
관료전은 관리에게 그 땅의 조세를 거둘 권리(수조권)만 주었다. 녹읍처럼 공물을 받거나 그 땅 백성의 노동력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귀족의 경제 기반을 줄이고 국가가 토지와 백성을 직접 장악하려는 것이었다. 2년 뒤인 689년에는 녹읍을 없애고 해마다 곡식(세조)을 주었다.
722년 성덕왕은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했다. 그러나 귀족의 반발 속에 757년 경덕왕 때 녹읍이 되살아나 왕권이 다시 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