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689년 1월(음력)녹읍 폐지신문왕이 귀족 관리의 녹읍을 없애고, 대신 해마다 곡식(세조)을 나누어 주게 했다.녹읍은 관리에게 그 지역의 조세를 거두고 백성의 노동력까지 부릴 수 있게 한 땅이어서 귀족 세력의 바탕이었다. 녹읍 폐지는 신문왕 대 왕권 강화의 정점으로 꼽힌다. 같은 해 신문왕은 도읍을 달구벌(대구)로 옮기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귀족의 반발 속에 녹읍은 경덕왕 때(757)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