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19년 3월(음력)

광해군의 중립 외교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을 후금 정벌에 보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크게 지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커지자 명은 임진왜란 때 도와준 은혜를 내세워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다(1618).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1만여 명을 주어 보내면서 형세를 보아 대처하라고 일렀다고 전한다.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무너지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하고, 조선이 어쩔 수 없이 출병했음을 알렸다.

광해군은 전쟁 뒤의 복구에 힘써 대동법을 경기도에 실시하고(1608), 양전과 호적 정리를 했으며, 동의보감을 완성시키고 사고(史庫)를 다시 정비했다. 일본과는 기유약조(1609)로 국교를 다시 열었다. 그러나 중립 외교와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서궁에 가둔 일(폐모살제)은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키는 명분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6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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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원군 — 광해군
명 · 지원 요청국 — 만력제
후금 · 교전국 — 누르하치
관련 장소
사르후

관련 인물

  • 광해군1575년 – 1641년

    군주 · 조선 제15대 왕. 대동법을 시작하고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 강홍립1560년 – 1627년

    지휘관 · 광해군 때 명의 요청으로 후금 정벌에 나선 조선군의 도원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패하자 후금에 항복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16년 누르하치의 후금 건국
이후 사건
1623년 승정원일기

이 사건이 든 테마

  • 붕당 정치의 전개1498년 – 1863년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