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법자강 운동과 무술정변
다른 이름: 무술변법, 변법 운동, 백일 유신
캉유웨이·량치차오가 광서제를 움직여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입헌 군주제를 향한 개혁을 폈으나, 서태후의 무술정변으로 100여 일 만에 끝났다.

청일 전쟁에 지자 기술만 배우는 양무운동으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캉유웨이는 시모노세키 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제도까지 바꾸어(변법) 나라를 강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1898년 6월 11일 광서제는 그를 등용해 과거제 개혁, 근대 학교와 경사 대학당 설립, 관제 정리, 신식 군대 양성 등의 개혁 조서를 잇달아 내렸다. 목표는 일본처럼 헌법과 의회를 갖춘 입헌 군주제였다.
그러나 보수파의 반발을 산 개혁은 9월 21일 서태후가 정변을 일으키면서 103일 만에 끝났다(무술정변). 광서제는 유폐되고 탄쓰퉁 등 6명이 처형되었으며 캉유웨이·량치차오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독립 협회가 만민 공동회를 열어 의회 설립을 요구했으나 연말에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