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99년 – 1901년 9월 7일

의화단 운동과 신축 조약

다른 이름: 의화단 사건, 북청 사변, 신축 조약

"부청멸양"을 내건 의화단이 교회와 철도를 공격하고 베이징의 공사관을 에워쌌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고, 청은 신축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였다.

8개국 연합군의 병사들 — 왼쪽부터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영국령 인도·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일본, 1900년
8개국 연합군의 병사들 — 왼쪽부터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영국령 인도·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일본, 1900년

Probably German officer Franz Scholz (in Tientsin / Tianjin) · Public domain · 원본

열강의 이권 침탈과 크리스트교 선교사·신자의 특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산둥에서 무술을 익히던 의화단이 "청을 도와 서양을 물리치자(부청멸양)"를 내걸고 일어났다. 1900년 6월 베이징에 들어와 교회와 철도·전신을 부수고 외국인과 중국인 신자를 죽이며 공사관 구역을 에워쌌다. 서태후는 의화단을 이용하려 열강에 선전 포고했다.

일본·러시아·영국·프랑스·미국·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의 8개국 연합군이 8월 14일 베이징을 점령했고, 서태후와 광서제는 시안으로 피란했다. 일본군이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다. 1901년 9월 7일 리훙장이 맺은 신축 조약으로 청은 4억 5천만 냥을 39년에 걸쳐 갚고, 베이징 공사관 구역과 베이징–톈진 철도 연선에 외국 군대가 머무르는 것을 인정했다.

청은 반식민지 상태로 더 깊이 빠졌고, 뒤늦게 입헌을 준비하는 광서신정에 나섰다.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가 물러나지 않자 영국과 일본은 1902년 영일 동맹을 맺었고, 이는 러일 전쟁과 대한제국의 운명으로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89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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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패전국 — 광서제
일본 · 연합군 — 메이지 일왕
러시아 · 연합군
영국 · 연합군
프랑스 · 연합군
미국 · 연합군 —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독일 · 연합군
이탈리아 · 연합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연합군
관련 장소
베이징, 톈진

관련 인물

  • 서태후1835년 – 1908년

    관련자 · 함풍제의 비, 동치제의 어머니. 수렴청정으로 반세기 가까이 청의 실권을 쥐었고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 리훙장1823년 – 1901년

    외교관 ·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04년 러일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