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단 운동과 신축 조약
다른 이름: 의화단 사건, 북청 사변, 신축 조약
"부청멸양"을 내건 의화단이 교회와 철도를 공격하고 베이징의 공사관을 에워쌌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고, 청은 신축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였다.

Probably German officer Franz Scholz (in Tientsin / Tianjin) · Public domain · 원본
열강의 이권 침탈과 크리스트교 선교사·신자의 특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산둥에서 무술을 익히던 의화단이 "청을 도와 서양을 물리치자(부청멸양)"를 내걸고 일어났다. 1900년 6월 베이징에 들어와 교회와 철도·전신을 부수고 외국인과 중국인 신자를 죽이며 공사관 구역을 에워쌌다. 서태후는 의화단을 이용하려 열강에 선전 포고했다.
일본·러시아·영국·프랑스·미국·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의 8개국 연합군이 8월 14일 베이징을 점령했고, 서태후와 광서제는 시안으로 피란했다. 일본군이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다. 1901년 9월 7일 리훙장이 맺은 신축 조약으로 청은 4억 5천만 냥을 39년에 걸쳐 갚고, 베이징 공사관 구역과 베이징–톈진 철도 연선에 외국 군대가 머무르는 것을 인정했다.
청은 반식민지 상태로 더 깊이 빠졌고, 뒤늦게 입헌을 준비하는 광서신정에 나섰다.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가 물러나지 않자 영국과 일본은 1902년 영일 동맹을 맺었고, 이는 러일 전쟁과 대한제국의 운명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