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76년 (진흥왕 37년)

화랑도의 국가 조직화와 세속 5계

다른 이름: 화랑도, 세속 오계

진흥왕이 원화를 없애고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만들었다. 뒤에 원광이 화랑이 지킬 세속 5계를 주었다.

화랑도는 본디 씨족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비롯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은 576년 여성 우두머리 원화(남모·준정)를 없애고 귀족 자제 가운데 화랑을 뽑아 받들게 했다. 화랑 아래에는 귀족부터 평민까지 많은 낭도가 따라 계층 간의 갈등을 누그러뜨렸고, 산천을 돌며 수련하고 전쟁에 나섰다.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서 나오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 말미암아 생겼다"고 적었다. 최치원은 난랑비 서문에서 유·불·선을 아우르는 우리 고유의 "풍류"를 화랑도와 잇는다.

수에서 공부하고 600년 무렵 돌아온 승려 원광은 가르침을 청한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 5계(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를 주었다. 두 사람은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싸우다 죽었다. 두 청년이 충도를 지키고 유교 경전을 익히기로 맹세한 임신서기석도 화랑의 기풍을 보여 준다(임신년은 552년 또는 612년으로 본다). 사다함·김유신 같은 화랑이 삼국 통일 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다.

지도에서 보기

576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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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진흥왕
관련 장소
서라벌 (경주)

관련 인물

  • 진흥왕534년 – 576년

    군주 · 신라 제24대 왕. 한강 유역과 대가야를 차지하고 순수비를 세웠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만들었다

  • 원광

    관련자 · 신라의 승려. 수에서 돌아와 귀산·추항에게 세속 5계를 주고, 진평왕의 명으로 걸사표를 지었다

  • 김유신595년 – 673년

    관련자 · 신라의 장군.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황산벌에서 계백을 꺾고 삼국 통일을 이끌었다

  • 김대문

    저자 · 성덕왕 때의 진골 학자. 『화랑세기』·『고승전』·『한산기』 등을 지어 신라의 전통을 기록했다

  • 사다함

    관련자 · 신라의 화랑. 562년 대가야 정벌 때 먼저 성문에 뛰어들어 공을 세웠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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