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의 국가 조직화와 세속 5계
다른 이름: 화랑도, 세속 오계
진흥왕이 원화를 없애고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만들었다. 뒤에 원광이 화랑이 지킬 세속 5계를 주었다.
화랑도는 본디 씨족 사회의 청소년 집단에서 비롯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은 576년 여성 우두머리 원화(남모·준정)를 없애고 귀족 자제 가운데 화랑을 뽑아 받들게 했다. 화랑 아래에는 귀족부터 평민까지 많은 낭도가 따라 계층 간의 갈등을 누그러뜨렸고, 산천을 돌며 수련하고 전쟁에 나섰다.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서 나오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 말미암아 생겼다"고 적었다. 최치원은 난랑비 서문에서 유·불·선을 아우르는 우리 고유의 "풍류"를 화랑도와 잇는다.
수에서 공부하고 600년 무렵 돌아온 승려 원광은 가르침을 청한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 5계(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를 주었다. 두 사람은 602년 아막성 전투에서 싸우다 죽었다. 두 청년이 충도를 지키고 유교 경전을 익히기로 맹세한 임신서기석도 화랑의 기풍을 보여 준다(임신년은 552년 또는 612년으로 본다). 사다함·김유신 같은 화랑이 삼국 통일 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