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19년 4월(음력)

현량과 실시

조광조의 건의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받아 간단한 시험으로 뽑는 현량과를 실시했다. 사림 28명이 뽑혔다.

조광조 초상 — 현량과를 건의한 사림의 지도자 (1750년 정홍래 그림)
조광조 초상 — 현량과를 건의한 사림의 지도자 (1750년 정홍래 그림)

National oh Jung Hong-rae · Public domain · 원본

중종반정 뒤 중종은 훈구 세력을 견제하려고 조광조 등 사림을 등용했다. 조광조는 현량과로 사림을 대거 관직에 올리고, 도교 제사를 맡던 소격서를 없앴으며, 향약과 소학을 널리 보급했다.

이어 중종반정의 공신 가운데 공이 없는 76명의 훈작을 깎자고(위훈 삭제) 하자 훈구파가 크게 반발했고, 그해 11월 기묘사화로 조광조는 쫓겨나 죽었다. 현량과도 폐지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5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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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중종

관련 인물

  • 조광조1482년 – 1520년

    주도자 · 도학 정치를 내세운 개혁가.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다

  • 중종1488년 – 1544년

    군주 · 조선 제11대 왕. 반정으로 왕이 되어 조광조를 등용했다가 기묘사화로 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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