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10년 4월(음력)
삼포왜란
부산포·제포·염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도움을 받아 난을 일으켰다. 진압 뒤 교역이 크게 줄었다.

申叔舟 · CC BY-SA 4.0 · 원본
세종 때 부산포·제포(웅천)·염포(울산)의 3포를 열어 일본인의 교역과 거주를 일부 허락했으나, 머무는 일본인이 크게 늘고 밀무역이 성행했다. 중종이 이들을 엄격히 단속하자 1510년 4월 3포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지원을 받아 폭동을 일으켜 부산포 첨사를 죽였다. 조선은 군대를 보내 진압하고 3포를 닫았다. 1512년 임신약조로 제포만 열고 세견선과 세사미두를 계해약조의 절반으로 줄였다. 이때 비변사가 임시 기구로 처음 설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