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10년 4월(음력)

삼포왜란

부산포·제포·염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도움을 받아 난을 일으켰다. 진압 뒤 교역이 크게 줄었다.

해동제국기의 동래 부산포 지도 — 1471년, 왜관이 그려져 있다
해동제국기의 동래 부산포 지도 — 1471년, 왜관이 그려져 있다

申叔舟 · CC BY-SA 4.0 · 원본

세종 때 부산포·제포(웅천)·염포(울산)의 3포를 열어 일본인의 교역과 거주를 일부 허락했으나, 머무는 일본인이 크게 늘고 밀무역이 성행했다. 중종이 이들을 엄격히 단속하자 1510년 4월 3포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지원을 받아 폭동을 일으켜 부산포 첨사를 죽였다. 조선은 군대를 보내 진압하고 3포를 닫았다. 1512년 임신약조로 제포만 열고 세견선과 세사미두를 계해약조의 절반으로 줄였다. 이때 비변사가 임시 기구로 처음 설치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51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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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중종
일본

관련 인물

  • 중종1488년 – 1544년

    군주 · 조선 제11대 왕. 반정으로 왕이 되어 조광조를 등용했다가 기묘사화로 내쳤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06년 중종반정
이후 사건
1519년 현량과 실시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 부산1443년 – 1979년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