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 전쟁
다른 이름: 제1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 독립 전쟁, 나크바, 팔레스타인 전쟁, 이스라엘 건국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나는 날 유대인 지도부가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자 주변 아랍 국가들이 쳐들어왔다. 이스라엘은 이를 "독립 전쟁"이라 부르고, 70만 명가량이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크바"(대재앙)라 부른다.

Rudi Weissenstein · CC BY-SA 3.0 · 원본
위임 통치 기간에 유대인 이민이 늘어 유대인이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되면서 아랍 주민과의 충돌이 거세졌다. 홀로코스트 뒤 유대 국가를 지지하는 여론이 커지자 영국은 문제를 국제 연합에 넘겼다. 1947년 11월 29일 국제 연합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고 예루살렘을 국제 관리 아래 두는 분할안(결의 181호)을 채택했다. 유대인 쪽은 받아들였고, 인구가 적은 유대 국가에 땅의 절반 이상을 주는 데 반대한 아랍 쪽은 거부해 곧 내전이 벌어졌다.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은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을 선언했고, 이튿날 이집트·트란스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군대가 쳐들어왔다. 전쟁은 1949년 휴전 협정으로 끝났고, 이스라엘은 분할안보다 넓은 옛 위임 통치령의 약 4분의 3을 차지했다. 요르단강 서안은 요르단이, 가자 지구는 이집트가 차지했으며 예루살렘은 둘로 갈렸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전쟁을 나라를 지켜 낸 "독립 전쟁"으로 기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70만 명가량이 피란하거나 쫓겨나 수백 개 마을이 사라진 "나크바"(대재앙)로, 매년 5월 15일에 기억한다. 이후 아랍 나라들의 유대인 수십만 명도 이스라엘로 옮겨 갔다. 난민의 귀환과 예루살렘의 지위는 지금도 풀리지 않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