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07년 8월 – 1909년

정미의병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맞서 해산 군인이 합류한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의병 전쟁으로 발전해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벌였다.

의병 — 1907년 매켄지가 찍은 사진
의병 — 1907년 매켄지가 찍은 사진

Frederick Arthur McKenzie · Public domain · 원본

해산 군인이 들어오면서 의병의 조직과 무기가 나아졌고, 유생·농민·포수·해산 군인 등 여러 계층이 참여했다. 의병은 간도와 연해주까지 활동 무대를 넓혔고, 홍범도·신돌석 같은 평민 의병장도 활약했다.

1907년 12월 양주에서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이듬해 서울 진공 작전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일본은 1909년 9월부터 두 달 동안 "남한 대토벌 작전"을 벌여 호남의 의병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살아남은 의병은 만주와 연해주로 옮겨 가 독립군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0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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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제국 — 순종
일본 · 교전국 — 메이지 일왕

관련 인물

  • 이인영1868년 – 1909년

    의병장 · 13도 창의군의 총대장. 서울 진공 작전 중 부친상으로 고향에 돌아갔고, 뒤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 허위1854년 – 1908년

    의병장 · 13도 창의군의 군사장. 선발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나아갔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 신돌석1878년 – 1908년

    의병장 · 평민 출신 의병장. 을사의병 때 영해에서 일어나 경상·강원 동해안 산악 지대에서 싸워 "태백산 호랑이"로 불렸다

  • 홍범도1868년 – 1943년

    의병장 · 대한 독립군 사령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위 사건 1건

  1. 전국의 의병 1만여 명이 양주에 모여 13도 창의군을 만들고 서울로 진격했다.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까지 나아갔으나 일본군에 밀려났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08년 신채호의 독사신론

관련 작품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