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62년 2월(음력)
진주 농민 봉기
다른 이름: 임술 농민 봉기, 진주 농민 항쟁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진주 농민들이 일어났다. 이해 봉기가 삼남 70여 고을로 번졌다(임술 농민 봉기).

세도 정치 아래 전정·군정·환곡의 삼정이 문란했고, 특히 환곡이 고리대처럼 변해 농민을 괴롭혔다. 진주에서는 백낙신과 진주 목사가 환곡의 결손과 세금을 농민에게 한꺼번에 떠넘겼다.
몰락 양반 유계춘이 이끈 농민들은 초군(나무꾼)을 앞세워 진주성에 들어가 아전을 죽이고 관아를 불태웠다. 봉기는 경상·전라·충청 삼남을 중심으로 함경도·제주도까지 번졌다.
정부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보내 수습하게 했다. 박규수는 원인이 삼정의 문란에 있다고 보고했고, 정부는 삼정이정청을 두었으나 곧 없애 근본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 이 경험으로 농민의 사회의식이 자라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