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개혁
고종이 열두 살에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고 세도 정치의 폐단을 고쳤다. 왕권을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했다.

Hulbert, Homer B. · Public domain · 원본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을 몰아내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고루 뽑았다. 비변사의 기능을 줄였다가 1865년 없애 의정부와 삼군부가 정치와 군사를 나눠 맡게 했고, 『대전회통』(1865)과 『육전조례』를 펴내 법전을 정비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경복궁을 다시 지었다.
삼정의 문란도 바로잡았다. 양전으로 숨은 땅을 찾아내고(전정),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호포제를 실시했으며(군정, 1871), 폐단이 가장 심한 환곡은 마을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창제로 바꾸었다(환곡). 1871년에는 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을 47곳만 남기고 정리했다.
개혁은 백성의 지지를 받았지만, 경복궁 중건에 쓴 원납전·당백전과 서원 철폐로 양반 유생의 반발을 샀다. 대외적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다. 1873년 최익현의 탄핵 상소를 계기로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서(친정) 흥선대원군은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