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920년 평양, 1923년 서울

물산 장려 운동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우리 손으로 만든 물건을 쓰자는 운동을 벌였다. 1923년 서울에서 전국 조직이 생겨 널리 퍼졌다.

조선 물산 장려회 회관 기공식 — 1931년 4월
조선 물산 장려회 회관 기공식 — 1931년 4월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920년 회사령이 폐지되고 1923년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가 다가오자, 민족 자본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를 구호로 토산품 애용·근검저축·금주·단연을 내걸었고,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 같은 단체가 함께했다.

토산품 수요가 늘자 상인과 자본가가 값을 올려 민중의 부담이 커졌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 계급만 이롭게 한다고 비판했다. 일제의 탄압도 겹쳐 차츰 힘을 잃었다.

지도에서 보기

1920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관련 인물

  • 조만식1883년 – 1950년

    주도자 ·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물산 장려 운동을 이끌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9년 의열단
이후 사건
1920년 산미 증식 계획

이 사건이 든 테마

  • 평양기원전 194년 – 2007년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