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의 밤
다른 이름: 깨진 유리의 밤, 11월 포그롬
나치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의 회당과 상점, 집이 습격당하고 불탔다. 깨진 유리 조각이 거리를 덮었다 하여 "수정의 밤"이라 부른다.

Unknown - Eisenach Stadt-Archiv (city-archive) or Center for Jewish history, NYC, · Public domain · 원본
1938년 10월 독일은 폴란드 국적 유대인 1만 7천여 명을 국경 밖으로 내쫓았다. 부모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17살 유대인 청년 그린슈판이 11월 7일 파리의 독일 대사관에서 외교관을 쏘았고, 그가 9일 숨지자 선전 장관 괴벨스가 보복을 부추겼다. 9일 밤부터 10일까지 나치 돌격대와 군중이 독일·오스트리아·주데텐란트 곳곳에서 유대교 회당 수백 곳에 불을 지르고 상점 7천여 곳을 부수었다.
적어도 91명이 죽었고 유대인 남자 3만여 명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나치 정부는 피해를 오히려 유대인에게 10억 마르크의 벌금으로 물리고, 유대인을 경제 활동과 학교에서 쫓아냈다. 국외 탈출이 급증했고 영국은 유대인 어린이 1만여 명을 받아들였다. 독일에서는 "11월 포그롬"이라고도 부르며, 법적 차별이 노골적 폭력으로 바뀐 이 사건은 홀로코스트로 가는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