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1년 – 1911년

청 말의 신정과 과거제 폐지

다른 이름: 광서신정, 청말 신정, 과거제 폐지

신축 조약 뒤 청은 1901년부터 신식 군대·학교·관제를 들이는 신정을 폈다. 1905년 1,300년 이어 온 과거제를 없앴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젊은이들 가운데 혁명가가 많이 나왔다.

청 말 신정으로 길러 낸 신군의 병사들
청 말 신정으로 길러 낸 신군의 병사들

Luther Knight · Public domain · 원본

시안으로 피란했던 서태후는 1901년 1월 개혁을 약속하는 조서를 내리고, 1902년 베이징에 돌아와 신정(광서신정)을 폈다. 3년 전 무술변법에서 짓밟았던 개혁의 상당 부분을 이번에는 조정이 스스로 들고 나온 것이다. 위안스카이는 즈리에서 서양식 훈련을 받은 북양 신군 6개 진을 길렀고, 각 성에도 신군이 생겼다. 근대식 학교가 세워지고 정부는 젊은이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1905년 9월 2일 청은 수나라 때부터 1,300년 이어 온 과거제를 없앴다. 출세의 길이 학교와 유학, 신군으로 바뀌면서 도쿄에는 한때 1만 명에 가까운 중국 유학생이 모였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혁명 사상을 받아들였고, 신군 장교와 병사들 사이에도 혁명 단체가 퍼졌다.

신정에 드는 돈은 신축 조약의 배상금과 함께 새 세금으로 백성에게 돌아갔다. 1906년 청은 헌법을 준비하겠다고 했으나(예비 입헌), 개혁은 만주족 황실의 권력을 굳히는 쪽으로 기울었다.

지도에서 보기

190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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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청 — 광서제
관련 장소
베이징

관련 인물

  • 서태후1835년 – 1908년

    핵심 인물 · 함풍제의 비, 동치제의 어머니. 수렴청정으로 반세기 가까이 청의 실권을 쥐었고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 위안스카이1859년 – 1916년

    핵심 인물 · 청 말의 북양군 실력자로, 임오군란 뒤 조선에 머물며 내정에 간섭했다. 신해혁명 때 청 황제를 퇴위시키고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었으나 독재 끝에 황제가 되려다 실패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04년 러일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신해혁명1894년 – 1916년

    흥중회에서 위안스카이의 죽음까지 — 빚과 개혁 실패 속에 혁명가와 신군이 청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의 첫 공화국을 세웠지만, 공화국은 독재와 황제 놀음을 거쳐 군벌의 시대로 들어간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