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 독립 선언과 만세 시위의 확산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식을 열고, 탑골 공원에서 학생과 시민이 독립 선언서를 읽고 만세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국외로 번졌다.

민족대표 33人 · Public domain · 원본
천도교·기독교·불교계 대표 33인(천도교 15, 기독교 16, 불교 2)이 고종의 인산(3월 3일)을 앞둔 3월 1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최남선이 쓴 선언서는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고, 끝에 붙은 공약 3장(누가 썼는지는 한용운설과 최남선설이 엇갈린다)은 질서 있고 평화적인 행동을 다짐했다. 민족 대표들은 태화관에서 선언식을 한 뒤 스스로 경찰에 알렸고, 탑골 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이 선언서를 읽고 거리로 나섰다.
시위는 비폭력을 내건 도시 중심의 시작에서, 상인의 철시와 노동자의 파업으로, 다시 농촌으로 번졌다. 농민들이 장날을 이용해 일어나고 일제가 무력으로 짓누르자 면사무소·헌병 주재소를 습격하는 폭력 투쟁으로 바뀌기도 했다. 간도 용정(3월 13일)·연해주·미국 필라델피아(한인 자유 대회)·일본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200만 명이 넘게 참여해 7,500여 명이 죽었다고 적었다.
3·1 운동은 모든 계층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고 일제가 무단 통치를 "문화 통치"로 바꾸게 했다.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등 아시아의 민족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