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다른 이름: 남강, 남강 이승훈
신민회 회원으로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3·1 운동 때 기독교 쪽 민족 대표였다
평안도에서 놋그릇 장사로 큰 재산을 모은 상인이었다.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신민회에 들어가 1907년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우고 평양에서 자기 회사를 경영했다. 1910년 기독교인이 되었고, 1911년 안악 사건과 105인 사건에 엮여 오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기독교 대표로 민족 대표 33인에 참여해 천도교 쪽과의 연대를 이끌었다. 출옥 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 참여하고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