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호의 난과 최영의 탐라 정벌
다른 이름: 목호의 난, 탐라 정벌
원이 제주에 두었던 목장의 몽골인 목자(목호)들이 명에 보낼 말을 내놓지 않고 난을 일으키자, 공민왕이 최영을 보내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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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를 진압한 원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고(1273) 목장을 열어 말을 길렀다. 목장을 맡은 몽골인 목자를 목호라 했다. 제주는 뒤에 고려로 돌아왔지만 목호의 세력은 그대로 남았다.
반원 개혁을 편 공민왕이 명과 가까워지자 명은 제주의 말 2천 필을 요구했다. 목호들은 "원 황제가 기른 말을 원수인 명에 바칠 수 없다"며 300필만 내고 버티다 난을 일으켰다. 1374년 공민왕은 최영을 도통사로 삼아 전함 300여 척과 군사 2만 5천여 명을 보냈다. 최영은 명월포에 올라 목호군을 무찌르고, 마지막으로 범섬에 들어간 무리까지 평정했다. 이로써 원의 세력이 제주에서 사라졌다. 최영이 제주에 있는 동안 개경에서는 공민왕이 시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