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파리 코뮌
다른 이름: 피의 일주일
프로이센에 항복한 정부에 맞서 파리 민중과 노동자가 세운 자치 정부. 두 달여 만에 정부군에게 진압되었고 "피의 일주일"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Bruno Braquehais · Public domain · 원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뒤 왕당파가 다수인 의회와 티에르 정부가 굴욕적인 강화를 맺자, 넉 달 넘는 포위를 견딘 파리 민중의 분노가 커졌다. 1871년 3월 18일 정부가 몽마르트르의 국민 방위대 대포를 거두려다 반발을 사자 정부는 베르사유로 물러났고, 파리 시민은 선거로 코뮌을 세웠다. 코뮌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 빵 공장의 야간 노동 금지 같은 정책을 폈다.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정부군이 파리에 들어와 시가전 끝에 코뮌을 진압했다(피의 일주일). 이때 죽은 사람은 수천에서 2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고, 수많은 사람이 처형되거나 유형을 갔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자 계급이 세운 첫 정부라 평가했고, 뒤의 사회주의 운동에 큰 상징이 되었다.